조충 (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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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충은 후한 영제 시기 십상시의 부수장으로, 영제가 어머니로 부를 정도로 총애를 받았다. 그는 환관으로서 권력을 휘두르며, 원소와 같은 비판 세력을 경계하고 당고의 금에 연루된 당인들을 탄압했다. 황건적의 난, 궁궐 화재 등을 겪으며 부정부패를 일삼았고, 하진 암살에 관여했으나 결국 원소 등에 의해 다른 환관들과 함께 살해되었다. 사후 그의 저택은 한복과 헌제가 사용했다.
조충은 십상시의 일원으로, 후한 영제 때 국정을 어지럽힌 간신 집단의 일원이었다. 영제는 그를 어머니라 불렀다고 한다. 환관(宦官)들의 전횡을 비판한 원소에 대해 '''"저 아이가 끝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3]
[1]
서적
후한서
2. 생애
젊은 시절 장양과 함께 급사중 지위에 있었다. 환제 시대에 소황문이 되었다. 환관 단경 등이 양기를 주살한 공적으로 열후에 봉해지자, 조충도 도향후가 되었고, 중상시에 임명되었다. 167년, 고향에서 부친의 장례를 너무 화려하게 치른 탓에 기주자사 주목에게 죄를 물어 부친의 묘를 파헤쳐 부장품을 몰수당했다. 이 때문에 조충은 분노하여 환제에게 참언하여 주목을 면직시켰다.
172년, 두무에 연좌되어 유폐되어 있던 두태후가 사망했을 때, 환관들을 중심으로 귀인으로서의 예로 장례를 치러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조충은 그 회의의 의장 역할을 맡아, 환관의 횡포에 저항하려는 이함과 진구와 논전을 벌였다. 결국, 영제는 이함 등의 의견을 채택했다.
이 무렵, 원소가 삼공의 초빙도 받지 않고 야에 있으면서 명사들과 우의를 맺고 있었다. 조충은 이 사실을 듣고 다른 환관들에게 경계하도록 말했다.
원소 등은 이 사실을 알고 환관 측 인물을 함정에 빠뜨려 살해하고, 오광, 원술과 함께 궁중에 난입하여 환관들을 몰살했다. 조충은 이렇게 다른 많은 환관들과 함께 살해되었다.
191년, 기주의 저택은 원소에게 기주목 지위를 양보한 한복이 거주했다고 한다. 196년, 낙양의 저택도 장안에서 탈출한 헌제가 임시 거처로 삼았다.
2. 1. 권력 장악
십상시 중 한 명이다. 후한 영제 때 국정을 어지럽힌 간신 집단 십상시의 부수장으로 영제가 그를 어머니라 불렀다고 한다. 당시 후한의 정치적 부패의 요인이었던 환관(宦官)들의 전횡을 비판한 원소에 대해 '''"저 아이가 끝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3]
젊은 시절, 장양과 함께 급사중 지위에 있었다. 환제 시대에 소황문이 되었다. 환관 단경 등이 양기를 주살한 공적으로 열후에 봉해지자, 조충도 도향후가 되었고, 중상시에 임명되었다.
영제 시대에 조절, 왕보, 후람 등과 함께 권세를 떨치며, 당고의 금에 의한 정쟁에서 승리하여 당인들을 탄압했다.
181년, 조절이 사망하자 대장추가 되었다. 조충과 장양 등 12명의 환관은 중상시에 임명되어 십상시라는 그룹을 형성했다. 모두 열후가 되었고, 일족을 각지 지방관에 임명하여 사복을 채웠다.
184년,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다. 낭중 장균은 난의 원인이 십상시들이 사복을 채우는 데에 있다며, 조충 등을 베어야 한다고 탄핵했다. 그러나 조충 등이 관직을 사임하고 옥에 출두하여 재산을 팔아 군비에 충당하자, 영제는 조충 등을 관직에 복귀시키고 오히려 장균을 체포했다. 또한 같은 환관인 여강이 영제에게 좌우의 탐욕스러운 자들을 주벌해야 한다고 상주하자, 조충은 하운과 함께 여강을 중상하여 자살로 몰아넣었다.
황보숭은 황건적 토벌로 기주에 있었을 때, 조충이 규정에 반하는 호화로운 저택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상주하여 몰수시켰다. 또한, 조충에게 뇌물을 요구받았지만 거절했다. 이 때문에 조충은 마찬가지로 황보숭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장양과 함께 영제에게 참언하여 면직으로 몰아넣었다. 후임 거기장군에 임명되었지만, 곧 사임했다.
185년, 궁궐에 화재가 발생했다. 그 수리를 위해 조충 등은 지방에서 세금을 징수했지만, 착복하여 사복을 채웠기 때문에 궁궐 재건은 다음 해에도 완료되지 않았고, 지방관이나 백성들의 원한을 샀다.
189년, 영제가 붕어하고 유변이 즉위하자, 외척인 하씨와 동씨가 대립했다. 조충은 송전과 함께 동씨 측 견석으로부터 하진의 주살을 상담받았다. 그러나 조충 등은 막판에 변심하여 곽승을 통해 계획을 하진 측에 누설하여 견석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한편, 하진이 원소 등과 환관 주멸을 획책하고 있다는 것을 알자, 조충 등은 하태후와 하묘를 끌어들여 저항했다. 더욱이 하진이 지방 군권을 쥔 동탁, 정원에게 소집을 걸었다는 것을 알자, 하진을 유인하여 죽이고, 거짓 조칙으로 자신들 측근으로 중앙 군권을 장악하려 했다.
2. 2. 전횡과 몰락
십상시 중 한 명으로, 후한 영제 때 국정을 어지럽힌 간신 집단 십상시의 부수장이었다. 영제는 그를 어머니라 불렀다고 한다. 당시 후한의 정치적 부패의 요인이었던 환관들의 전횡을 비판한 원소에 대해 '''"저 아이가 끝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3]
181년, 조절이 사망하자 대장추가 되었다. 조충과 장양 등 12명의 환관은 중상시에 임명되어, 십상시라는 그룹을 형성했다. 모두 열후가 되었고, 일족을 각지의 지방관에 임명하여 사복을 채웠다.
184년,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다. 낭중인 장균은, 난의 원인은 십상시들이 사복을 채우는 데에 있다며, 조충 등을 베어야 한다고 탄핵했다. 그러나 조충 등이 관직을 사임하고 옥에 출두하여 재산을 팔아 군비에 충당하자, 영제는 조충 등을 관직에 복귀시키고 오히려 장균을 체포했다. 또한 같은 환관인 여강이, 영제에게 좌우의 탐욕스러운 자들을 주벌해야 한다고 상주하자, 조충은 하운과 함께 여강을 중상하여 자살로 몰아넣었다.
황보숭은 황건적 토벌로 기주에 있었을 때, 조충이 규정에 반하는 호화로운 저택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상주하여 몰수시켰다. 또한, 조충에게 뇌물을 요구받았지만 이 또한 거절했다. 이 때문에 조충은, 마찬가지로 황보숭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장양과 함께 영제에게 참언하여, 면직으로 몰아넣었다. 후임 거기장군에 임명되었지만, 곧 사임했다.
185년, 궁궐에 화재가 발생했다. 그 수리를 위해, 조충 등은 지방에서 세금을 징수했지만, 착복하여 사복을 채웠기 때문에, 궁궐의 재건은 다음 해에도 완료되지 않았고, 지방관이나 백성들의 원한을 샀다.
189년, 영제가 붕어하고 유변이 즉위하자, 외척인 하씨와 동씨가 대립했다. 조충은 송전과 함께, 동씨 측의 견석으로부터 하진의 주살을 상담받았다. 그러나 조충 등은 막판에 변심하여, 곽승을 통해 계획을 하진 측에 누설하여, 견석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한편, 하진이 원소 등과 환관 주멸을 획책하고 있다는 것을 알자, 조충 등은 하태후와 하묘를 끌어들여 저항했다. 더욱이, 하진이 지방의 군권을 쥔 동탁·정원에게 소집을 걸었다는 것을 알자, 하진을 유인하여 죽이고, 거짓 조칙으로 자신들의 측근으로 중앙의 군권을 장악하려 했다. 그 사실을 안 원소 등은 거꾸로 환관 측 인물을 함정에 빠뜨려 살해하고, 이어서 오광·원술과 함께 궁중에 난입하여 환관들을 몰살했다. 이렇게 조충은 다른 많은 환관들과 함께, 허망하게 살해되었다.
십상시의 난(189년 9월 22일(음력 8월 25일) 때 취화루 아래에서 하진의 동생 하묘에게 살해당했다.
2. 3. 사후
189년 9월 22일(음력 8월 25일) 십상시의 난 때 취화루 아래에서 하진의 동생 하묘(何苗)에게 살해당했다.[3]
3. 가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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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후한서
[3]
서적
삼국지
0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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